사회학적으로 본 고빈도매매

1.
디지탈, 정보화사회라는 화두는 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네그로폰데(Nicholas Negroponte)가 쓴 ‘디지탈이다(Being Digital)’은 초기 정보화사회론을 장미빛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20%가 80%의 자원을 소비하며 1/4이 만족할 만한 삶의 수준을 누리는 반면 3/4은 그렇지 못한 상태에 있다. 어떻게 이러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까? 정치가들이 역사의 쓰레기더미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사이에 새로운 세대가 과거의 수많은 편견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디지털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 아이들은 우정과 협동, 그리고 놀이를 통해 편협한 근친성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들을 더 거대한 세계의 조화로 이끄는 자연적 힘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세계의 조화로운 효과는 과거에는 서로 구분되었던 학과와 사업이 서로 경쟁이 아니라 협동하는 사실에서 이미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잃어버렸던 과거의 공동 언어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경계를 넘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오늘날의 학교 아이들은 같은 사물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는 기회를 체험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은 컴퓨터 지시어의 집합인 동시에 프로그램 텍스트를 구성하는 톱니로 씌어지는 시로 읽힐 수도 있다. 아이들은 프로그램을 안다는 것이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아는 것임을 매우 빨리 배운다.

그러나 나의 낙관주의는 무엇보다도 디지털화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분권화의 특성에 기인한다. 접근성, 이동성,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미래를 지금과 다르게 만들 것이다. 정보고속도로는 지금은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아주 억제된 표현에 불과하다. 그것은 여러 가지 예언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아이들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정보 자원을 전유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에는 아주 조금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희망과 존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중에서

요즘 정보화사회 혹은 디지탈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모릅니다. 다만 디지탈사회와 자본주의사회를 어떤 관계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두가지 큰 흐름이 있을 듯 합니다. 서평을 통해보면 정보화사회를 또다른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 듯 합니다. 단속사회나 투명사회도 그런 시각으로 보입니다.

단속은 우선 ‘단속’(斷續), 끊어짐과 이어짐을 뜻한다. 책은 우리가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지만 ‘타인의 고통’처럼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단속은 또한 ‘단속’(團束)이다. 그리하여 단속은 ‘동일성에 대한 과잉접속’과 ‘타자성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양극화됐다.

옆 사람에게는 그저 ‘예의 바른’ 얼굴로 선을 긋는다. 부모나 동료에게도 무심하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중독자처럼 접속해 자신을 드러낸다. 정치적인 공동체는 붕괴되고 동일성만 추구하는 ‘취향의 공동체’만 소비된다. 공동체에서 ‘타자’로 찍혀 사냥감이 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단속(團束)한다.
단속사회중에서

한병철 교수의 투명사회에 대한 서평중 일부입니다.

“전면적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화의 흐름 속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 튀는 견해를 밝히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매끈하게 다듬고 평준화하는 작용을 하여, 결국 획일화를 초래하고 이질성을 제거한다. 투명성은 순응에 대한 강압을 낳고 이로써 지배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리하여 투명성은 “전제적 지배자”가 되고 “테러”가 되며, “자유는 곧 통제의 지옥”으로, 투명사회는 통제사회로 바뀐다고 한 교수는 경고한다.

이런 상황에선 정치도 소비사회의 상품거래처럼 변질된다. 정치가는 납품업자가 되고,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은 공동체를 향한 능동적 관심이 아니라 상품 품질에 대해 투덜거리며 스캔들·추문에나 관심을 쏟는 수동적인 소비자, 구경꾼·관객의 그것으로 변질된다.

소셜미디어도 사회적인 삶을 감시하고 착취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변해간다.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규율사회의 파놉티콘은 효과적인 감시를 위해 수감자들을 격리하고 서로 얘기도 하지 못하게 했지만, 21세기의 디지털 파놉티콘 주민들은 서로 열심히 소통하고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노출(전시)시키면서 자신들이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를 한 교수는 ‘포르노사회’라고도 불렀다.

2.
정보화사회론을 그대로 트레이딩에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객장에서 이루어지던 트레이딩이 디지탈혁명을 통하여 온라인화하고 다시금 자본간의 경쟁으로 인하여 기계트레이딩화하고 있습니다 HFT나 Low latency Trading도 기술 경쟁의 산물로 볼 수 있지만 자본의 경쟁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거래소가 제공하는 코로케이션서비스를 이용하는 자본의 규모와 증권사 DMA나 HTS를 사용하는 자본의 규모는 같을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사회는 이를 차별이라고 하지 않고 차이라고 할 뿐입니다.

이와 같은 투박한 시각은 정교한 이론으로 만든 분이 계십니다. Davis Golumbia 교수로 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 대학의 Department of English and the MATX (Media, Art, and Text) 조교수로 Digital studies and theory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가 uncomputing입니다.

이 분이 HFT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High-Frequency Trading: Networks of Wealth and theConcentration of Power을 발표하였습니다. 2012년입니다. Golumbia교수가 분석한 HFT입니다.

The development of High-Frequency Trading (HFT)—automated trading of stocks, as well as bonds, options, and other investment instruments—provides a signal example of the political effects of computerization on a discrete social sphere. Despite the widespread rhetoric that computerization inherently democratizes, the consequences of the introduction of HFT are widely acknowledged to be new concentrations of wealth and power, opacity rather than transparency of information flows, and structural resistance to democratic oversight and control. Even as computerized tools undoubtedly provide individual investors with more power relative to what they had before, they also provide powerful actors with relatively more power as well, in some cases effectively excluding the majority of individuals from insight or meaningful participation whatsoever, especially with regard to the political impacts of market activities. Reports on recent financial crises, and the 2011 film Margin Call provide narrow windows into the operations of HFT and the challenges it poses to democracy; these in turn raise significant problems for the view that computerization inherently democratizes.

Download (PDF, 220KB)

Golumbia 교수가 쓴 책중 The Cultural Logic of Computation이 있습니다. Computerized Trading and “Internet Democracy”을 보면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In his 2009 book The Cultural Logic of Computation, David Golumbia argues against the still-common notion that internet access and rampant computerization will be inherently democratizing forces. Rather, he says, it’s just as likely that the undeniable empowering effects of computerization will serve to exacerbate imbalances of wealth and power.

HFT도 위와 같은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HFT 규제를 경제학적인 시각이 아닌 정치적 평등의 시각으로도 다룰 수 있습니다. HFT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는 결국 공정성과 투명성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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