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보3 – 다시 페달을 밟으며

1.
풍광보. 저와 함께 하는 자전거의 이름입니다. 지난 주 세번째로 자전거를 샀습니다.

windlight 풍광보1이 저의 곁을 떠난지 2년만입니다. 풍광보1은 저와 함께 8,000km를 함께 했습니다. 어느 날 자전거 핸들부분 프레임에 금이 보이더군요. 힘을 많이 받는 여러번 의 업힐을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간 듯 합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고 결국 부러졌습니다. 아는 이로부터 중고로 가벼운 자전거를 사서 풍광보2로 해서 탔습니다만 불편하였습니다.

2014년 6월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건강을 위해 픙광보2는 어느 전철역에 갔다놓았습니다. 출퇴근길 짧은 거리라도 자출 혹은 자퇴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만 짧은 거리로는 떨어지는 체력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해가 바뀌어 마음을 바꾸어 새로 자전거를 샀습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신체 운동과 더불어 친구와 함께 하는 일입니다.

통합시험을 시작하면서 주말에 출근하는 날이 많아집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전거로 출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08년에 평일 이틀 했던 자출입니다만 한동안 뜸했습니다. 전철역에서 여의도보다 몇 배가 긴 거리이고 출근길에 남태령을 넘어야 합니다. 퇴근길은 여의도에서 안양천과 학의천을 따라서 과천으로 넘어오는 길입니다. 삼원 첫날 시험삼아 해보았습니다. 페달을 몇 번 밟지 않았는데 다리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점심도 부실하게 먹고 퇴근하는 길이라서 과천 오는 길이 멀고도 험했습니다. 평소보다 1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집에 와서 탈진을 했고 체중을 보니 2Kg이 줄었더군요(^^)

2008년 과천을 떠나 강화도로 갔다 온 때 160km를 달렸습니다. 13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40km정도인데 그 때만큼 힘들었습니다. 1/4체력이고 저질체력입니다. 나이가 들면 허벅지근육이 체력이라고 하는데 반성에 반성을 했습니다. 다시금 3월 첫주말 자출을 하고 자퇴를 했습니다. 지난 번보다 1시간정도 단축했고 힘도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몸이 그 때를 기억하고 한주동안 준비를 했나 봅니다. 다시금 페달을 밟으려고 합니다.

페이스북에서 읽었던 글입니다.

바람이 없는 날 힘차게 페달을 밟으면 친구가 바로 달려와 안깁니다.
바람이 약한 날이라면 힘차게 페달을 밟아 졸고 있는 친구를 깨워 부릅니다.
그러면 기꺼이 다가 와 함께 해주지요.
바람이 센 날? 그 때는 친구와 씨름을 하는데, 때론 등 밀어 언덕도 오르게 합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요즘, 바람이 강합니다. 글 그대로의 느낌입니다. 나의 친구인 풍광보와 바람을 느낍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에 나오는 글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1미터의 코 스모스 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 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

산보가 보여주는 세계와 자전거로 만나는 세계가 다르지만 자전거로 만나는 세계는 내 몸이 만들어낸 세계입니다.

2.
자전거예찬중 유명한 글이 소설가 김훈씨의 ‘자전거예찬’입니다. 또다른 글을 읽었습니다. 김창완씨의 자전거예찬입니다. 자전거가 만드는 세계가 궁금하다고 하면 한번 읽어보세요.

휴대폰을 놓고 나오면 사람들 대부분이 발길을 돌려 그것을 찾은 다음에 가던 길을 간다. 분리 불안증을 느낄 만큼 휴대폰과 떨어져서는 못 사는 것이다. 많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꼼꼼하게 비서 노릇을 해주는가 하면, 심지어 잠 못 드는 밤에 파도 소리로 재워주기까지 하는 게 휴대폰이다. 인간은 쉽게 길들여지는 동물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손바닥만 한 기계와 1촌 관계를 맺고 말았다. 인간이 휴대폰에 길들여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만 년 전부터 동물들을 길들여 온 인간의 노하우가 수많은 변종 휴대폰을 만들어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휴대폰이 가축화된 기계라면 자전거도 그런 기계 중 하나다. 바퀴를 문명의 잣대로 삼곤 하는데, 그런 문명의 정점에서야 이 두 바퀴 장치가 비로소 길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 의아하다. 아직 덜 길들여져서 그런지 몰라도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을 때나 처음 자전거를 갖게 됐을 때의 느낌은 상당히 원초적이다. 그 느낌은 처음 낯선 친구와 말을 나누었을 때 또는 처음으로 친구가 내 손을 잡아 주었을 때의 감동과 유사하다.

자전거를 대충만 알고 아직 손 내밀어 친구를 맺기 전이라면 아직은 보조 바퀴를 못 떼고 타는 것과 다름없다. 막역한 사이가 되어 언제라도 부르면 달려나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함께 떠날 수 있다면 보조 바퀴 없는 진정한 라이더가 된 것이다. 자전거는 일상을 벗어던질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준다. 자전거를 처음 선물받았을 때 기분은 여느 다른 선물을 받았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반지는 반지고 옷은 옷이고 케이크는 케이크다. 그러나 자전거는 친구다. 친구가 선물로 온 것이다. 당장 무슨 말을 건네야 할 것 같고, 당장 걔를 위해 뭔가 해주어야 될 것 같다.

자전거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타주는 것이라면 한밤중에 선물을 받았더라도 당장 타고 나가줘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 같은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처음 보는 친구 앞에서 나를 돌아보듯이 내가 과연 저 사람에게 받아들여질까, 저 사람이 내게 다가와줄까 하는 설렘 또는 두려움이 생긴다. 이런 불안한 마음 또한 다른 선물을 받았을 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유아적 믿음이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자전거 탈 때의 쾌감 또한 유별나다. 짜릿하거나 상쾌하다는 식으로 표현되지만 친구라는 느낌을 배제하면 뭔가 부족하다. 자전거의 쾌감이라는 것은 키 큰 친구를 만나 내가 조금 더 커진 느낌이며, 더 멋진 친구를 만나 내가 조금 더 멋져졌고, 요즘처럼 에코(eco)가 인류의 화두가 된 세상에서는 나 스스로도 조금은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인 것이다.

친구 관계는 일방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소통이 필요하다. 꺼져있는 노트북은 말이 없지만 서 있는 자전거는 말을 건다. “힘들지?” 한 100㎞쯤 달리다 편의점에서 물을 사 먹고 있으면 그렇게 묻는다. 장마 통에 창고에 처박혀 있을 때는 “날씨 참 거지 같다. 요즘엔…” 그러는 것만 같다. 자전거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을 때는, 인생이 그렇다는 건지 바람이나 한번 쐬고 싶다는 건지 모르게 “갈 길이 멀다”며 넋두리를 하기도 한다.

진정한 친구로서 자전거는 우리에게 요구하기 시작한다. 잊고 살던 일상, 모른 척하고 지나치던 사물들에 질문할 걸 강요한다. 겨울 땅을 뚫고 나오는 이른 봄의 새싹부터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아침 새들의 합창까지 다시 보고 들을 걸 요구한다. 그렇게 자전거는 사람과 소통한다.

근 15년을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가 반이요, 추운 겨울 새벽에도 차고 문만 열면 “타이어에 바람이나 좀 넣어봐” 하는 자전거의 또 다른 의지가 반이다. 내가 소리꾼이면 자전거는 고수(鼓手)쯤 된다. 잘한다 싶으면 용기를 북돋아주고 힘들어하면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개가 주인을 닮는다고 하듯 자전거도 주인을 닮는다. 사랑받는 자전거는 꽃처럼 핀다.

‘생활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인생이다’라는 책에서 저자 그레그 앤더스는 우리 스스로와 세상을 좀 더 멋지게 바꾸는 힘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의 법칙’을 제안하고 있다. 이 법칙은 자전거가 우리에게 실천을 요구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일이 판단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것은 인생의 모든 분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전거를 운송 수단이나 운동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아마도 진정한 자전거와는 멀어질지 모른다. 이어서 자전거가 생활의 일부가 되고 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를 예언하는 듯한 구절이 나온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법칙’은 아주 혹독한 감독관이다. 한번 무조건적인 사랑의 열매를 맛본 다음에는 절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영원히 우리의 일부가 되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한번 자전거와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그 늪을 헤쳐 나올 수 없고 그런 태도는 개인을 넘어 집단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른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길은 우리를 폭력의 숲 속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행동·태도·언어·습관 그리고 생각들을 바꾸라고 말한다.” ‘자전거 타기’ 같은 작은 실천이 우리를 ‘폭력’으로부터 구하고 다른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가 유럽 사람들처럼 생활하려면 지구가 세 개나 네 개쯤 돼야 한다는 현실에서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는 훌륭한 도구가 자전거일 수 있다. 자전거야말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법칙’인 것이다. 모든 물건은 상품이며 모든 인간은 소비자일 뿐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인 이 세상에서 자전거는 든든한 내 친구, 아름다운 반려 기계가 아닐 수 없다.
김창완의 자전거 예찬_”너는 든든한 친구, 나의 반려 기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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