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와 명량이 그리는 세계

1.
2014년 여름. 남들이 휴가로 설렐 때 저는 영화관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습니다. 군도, 명량, 해무, 해적까지, 계속해서 개봉하는 한국영화로 더운 여름을 나기로 했습니다.

우선 군도와 명량을 지난 주, 이번 주에 보았습니다. 군도를 두고 이런 저런 말이 많았습니다. 군도 – 민란의 시대! 제목에 걸맞게 농민들이 각성하고 투쟁에 나서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그린 드라마이길 바란 듯 합니다. 비평을 하는 분들이 어떤 장면을 원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즐겁게 나름 의미도 느끼면서 보았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도적입니다. 군도는 도적의 무리입니다. 영화에서 도적은 중의적입니다. 계급질서 속에서 착취를 일 삼는 놈은 권력과 돈을 가진 도적떼들입니다. 이들이 만든 질서를 거부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놈들도 도적이라고 불립니다. 정경유착으로 농민을 노비로 전락시키는 질서는 전주성이 상징합니다. 지리산은 도적떼들의 은신처이면서 유토피아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의 하늘아래 한 형제요, 한자매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덧 힘 있는자가 약한자를 핍박하고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자를 착취하니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도적이 될지를 물어봅니다. 뭉치면 새질서를 만드는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계급질서속에서 남을 등치는 도적이 됩니다. 그래서 영화속 대사가 백성이 마음을 움직였나 봅니다.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

영화는 희망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민란으로 일어선 백성들이 새로운 질서를 위한 도적이 되는 모습을 그립니다. 전주성을 나와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말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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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강동원의 칼이 아름답습니다. 2005년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절대 악인인 조윤이지만 마지막 순간 아기를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고 사랑을 위해 절대 악인이 되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남아 있습니다.

2.
명량은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일본군과 맞서야 하는 이순신 장군의 고뇌가 출발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이지만 조정은 ‘바다’를 버리라고 합니다. 참혹한 패전으로 군사들은 죽음의 공포에 떱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귀선(龜船)마저 불타 없어집니다. 이런 조건이 어떻게 명량의 대승으로 이어졌는지, 영화 보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이순식 장군이 택한 길은 죽음입니다. 귀선이 상징하는 전술은 충파입니다. 적의 진영으로 돌직하여 적의 함선을 산산조각 내는 전술입니다. 귀선이 없는 충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순식장군이 택한 길은 죽음입니다. 솔선수범으로 군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만듭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生卽必死 死卽必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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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이순식 장군과 아들 이회의 대사입니다.

“충은 의리다. 의리는 왕이 아닌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영화의 마지막 이순식 장군과 이회가 다시 대화를 나눕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명량에서 무엇이 운이냐고 물었습니다. “명량의 회오리속에서 대장선을 구해낸 백성이다”라고 답합니다.

“백성이 나를 끌어준 것이 천행인지, 회오리가 몰아친 것이 천행인지 생각해 보거라”

명량에서 대승을 거둔 후 판옥선 아래 노 젓는 군사들이 옹기종기 누워서 대화를 합니다.

“후손들은 우리가 이렇게 조빠지게 싸웠단 것을 알까?”
“모르면 개새끼들이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감독은 역사의 주인공은 백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합니다. 그렇지만 백성이 지킨 조선이 결국 백성을 수탈하는 거대한 도적으로 변해갑니다. 군도가 그리는 조선 후기가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백성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지만 사대부 독재에서 백성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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