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과 현금기계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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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도입할 때 치열한 사내유보금 논쟁이 있었습니다. 먼저 기업소득환류세제의 경과입니다.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그 돈을 활용해 (이익을) 가계에 돌려주는 게 시장경제의 정상적 구조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가 돈을 빌려 쓰고, 기업이 저축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배당이나 투자 성향 등을 고려하면 사내유보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과세나 인센티브 등을 통해 기업이 창출한 소득이 가계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구상하겠다.”

언뜻 좌파 경제학자의 주장처럼 보이는 이 말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기업이 쌓아둔 비상금에 손을 대겠다는 것인데 친기업, 친시장주의자인 최 부총리의 일격에 재계는 적잖이 당황했다. 시계를 그로부터 8개월 전으로 돌려보자. 2013년 11월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을 때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대대표는 “(과세를 한다고 기업이) 투자를 할 거라고 생각하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재계 입장에서는 넋 놓고 있다 제대로 한 방 맞은 셈이다.

최 부총리의 구상은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투자나 배당, 성과급 등으로 쓰면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않고 과도하게 쌓아둘 경우 과세하겠다는 것이었다. 화두는 섹시했으나 당시 시장에서는 “이게 되겠어?”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인센티브야 기준을 정하기 나름이지만 과세는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단 어느 정도를 ‘적절한’ 유보금으로 볼 것인지부터 애매한 데다 이미 쌓여있는 유보금에 과세하는 것은 계산식부터 매우 복잡하다. 최 부총리 역시 다음날 한 단계 수위를 낮춰 “과도한 사내유보금이 배당과 임금 등의 방식으로 가계로 흘러가게 할 경우 전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도록 (과세 체계를) 디자인할 것”이라며 “기업의 의사를 강제 한다든지 사업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표현은 과세 또는 인센티브라고 했지만 사실상 과세보다는 인센티브에 무게가 실렸던 이유다.

그러나 그의 구상은 한 달 뒤에 현실이 됐다. 기재부는 8월 6일 세법개정안에 기업의 투자, 임금 증가, 배당 등이 당기 소득의 일정액에 미달할 경우 추가 과세한다는 내용의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12월 26일, 법인세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자기자본 500억원을 초과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이 대상이다. 과세 방식은 기업의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를 포함하는 방식은 기업이 거둔 소득의 80%에서 투자와 임금 증가, 배당에 쓴 돈을 제외하고 남은 돈에 과세한다. 투자를 제외하는 방식은 소득의 30%에서 임금 증가와 배당에 쓴 돈을 제외하고 남은 돈에 과세한다. 세율은 10%로 고정했다.
대기업 사내유보금의 정치경제학 – 절묘한 재계의 절충안? 법인세 인상은 ‘No’ 사내유보금 과세는 ‘OK’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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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과정에서 쟁점은 사내유보금의 정의입니다.시사인의 기사입니다.

기업들이 사내유보금 중 투자, 임금 인상, 추가 고용, 배당금 등으로 지출할 수 있는 자금은 얼마나 될까? 일부 정치인들은 ‘사내유보금 710조원 중 10%(71조)만 동원해도 엄청난 재정투입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사내유보금 전체를 현금화해서 지출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의견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과 이들을 대변하는 이익단체, 연구기관 등은 사내유보금 중 대부분이 이미 기계설비·공장·토지 등 실물자산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활용 가능한 자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전경련 측에서는 그 비중이 80%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고 남은 20%를 지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 처지에서는 미래의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유동성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 말이 옳을까?

이를 판단하려면 먼저 사내유보금의 개념부터 확실히 잡을 필요가 있다.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는 마치 특정 기업이 사내의 금고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뜻으로도 들리지만 이는 오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거둔 순이익 중 세금과 배당금을 내고 남은 부분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기업의 창고에 현금으로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설비나 공장 등 실물자산은 물론 각종 금융상품의 형태로도 잠겨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전경련의 주장(‘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이 이미 활용되고 있다’)은 옳은 부분도 있고 그른 부분도 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진실중에서

사내유보금이 현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어느정도일까요? 2015년도 경제주체별 화폐사용행태 조사 결과입니다.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도 경제주체별 화폐사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현금보유규모가 1000만원 미만인 기업의 비중은 76.6%에 달했다. 반면 1000만원 이상을 보유중인 기업은 3.2%에 불과했다. 현금보유가 큰 업종은 음식숙박업(58.1%), 도소매업(16.1%), 운수업(12.9%) 순이었다. 또 기업의 41.3%는 예비용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들 기업의 보유현금 중 예비용 현금 비중은 52.8%였다.
[화폐 사용 실태②] 기업 76.6% 보유현금 ‘1000만원 미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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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내유보금은 IMF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5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자료가 자세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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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사내 유보금이 현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내유보금이 현재 진행중인 쟁점입니다. 아마도 사내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다 : 사내유보금에 대한 대표적인 3가지 오해가 설명하는 오해가 한몫을 하겠지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늘어나는 반면 가계빚은 계속 늘어나는 현실이 더 큰 원인입니다.

10대그룹 상장사 사내유보금 477조원…3년새 44%↑
10대그룹 상장사 사내유보금 504조…1년새 40조 불어
상장사 곳간에 쌓아둔 유보금 100조 늘어

가계 부채 사상 최고치···기업 사내유보금 3년간 146조 증가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는 “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잣대로 해석할 수 없지만 여러가지 견해를 정리한 논문입니다. ‘기업의 불확실성’이 현재의 증가를 설명한다는 추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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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뿐 아니라 해외도 사내유보금을 놓고 설왕설래중입니다. 솔직히 사내유보금을 영어로 하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Cash Holding이라고 하면 좁은 의미일 듯 하고 Free Cash Flow도 아니고 Forbes에 실린 Dispelling The Myth of Corporate Cash Hoarding을 보니까 Corporate Cash Hoarding이 비슷한 의미일 듯 합니다. Hoarding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네요.

Hoarding is a pattern of behavior that is characterized by the excessive collection of and inability or unwillingness to discard large quantities of objects

뉴욕타임지 Why Are Corporations Hoarding Trillions?를 보면 사내유보금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사람의 시각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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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미국도 한국처럼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이슈로 등장한 듯 합니다. The 25 Largest Corporate Cash Hoarders in America가 소개한 현황입니다. 애플의 사내유보금을 보니가 해외 유보금은 빠진 듯 합니다.

이코노미스트 Japanese and South Korean firms are the world’s biggest cash-hoarders를 보면 일본과 한국의 기업이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보다 훨씬 높은 유보금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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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유럽의 사내유보금 논쟁이 세금회피를 포함하고 있어서 한국과 약간 다릅니다. 대표적인 IT기업인 애플사례입니다.

유럽의 전자산업 감시 시민단체인 굿일렉트로닉스(goodelectronics.org)와 네덜란드 비정부기구 소모(SOMO)는 최근 ‘애플의 금융화: 부자 기업, 가난한 사회’라는 보고서를 내 애플이 막대한 부를 쌓아도 사회에는 도움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 보고서는 애플이 한국, 독일, 일본 등의 기업으로부터 부품을 사들여 중국에서 폭스콘 등 하청업체에 싼 임금을 주면서 조립하도록 하는 생산 형태로 인해 중국은 물론 전세계 노동자들이 적정 임금을 받지 못하는 반면 애플은 막대한 부를 쌓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애플의 해외조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세금 회피’ 문제를 따졌다. 애플은 조세 당국의 힘이 미치지 않는 미국 네바다와 유럽 아일랜드 등 조세 피난처에 자회사를 여럿 두고 있다.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자회사인 애플 오퍼레이셔널 인터내셔널(AOI)을 비롯해 손자회사 애플 오퍼레이셔널 유럽(AOE) 등은 아일랜드에 있다. 이 곳 법인세율은 12.5%로 유럽에서 가장 낮지만 애플은 2%까지 낮췄다. 특히 애플 오퍼레이셔널 인터내셔널은 직원이 한명도 없고, 1000억달러(약 110조원)의 현금 유보액은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또다른 자회사 브래번캐피털이 운용하고 있다. 그 돈은 미국 뉴욕의 은행에 예치돼 있다.

다른 손자회사인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 역시 2009~2012년 740억달러(약 84조원)의 현금을 쌓는 동안 한명의 고용도 없었다. 아일랜드의 애플 디스트리뷰션 인터내셔널(ADI), 싱가포르의 애플 사우스 아시아 등도 미국 본사에서 주로 막대한 연구·개발(R&D)비용을 쓰지만 함께 비용을 공유하도록 해서 미국에서 세금을 덜 내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처럼 아일랜드와 미국의 다른 세금 관련 법을 이용해 애플이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자기업 애플, 노동자 쥐어짜고 조세회피”중에서

위 기사의 출처는 ‘Cash machine’ Apple creates poor societies입니다. 보고서의 제목은 ‘Rich Corporations, Poor Societies: The Financialisation of Appl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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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미국의 자료를 보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내유보금이 더 크게 늘어나고 법인세 인하가 사내유보금 증가에 영향을 미친 듯 합니다. 세금인하의 혜택이 대기업으로만 돌아갔습니다. New study: corporate tax cuts may have been ‘the greatest blunder’의 자료입니다.

CCPA-hoarding-vs-corp-t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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