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5월 어느날에…

지난 3년의 고통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뜻을 세우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도전을 하지만 그 도전은 많은 경우 실패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다가 옵니다. 왜 그럴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이 고통의 끝은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나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고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난 누구의 기억속에서 남아있을까? 아니 누구의 기억속에도 남아있지 않겠지. 어짜피 한번 살다 가면 그만인 인생인 것을 이리살면 어떻고 저리 살면 어떻고.아마 내놓고 이런 야기를 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80년대 인간전형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우리삶의 전형인 것처럼 기억되던 시절도 있었다. 진리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모든 것이 파괴되는 시대가 왔다. 남들이 그렇다고 한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아래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그런 파괴가 진리이고 생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즐긴다. 과연 진리는 파괴되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가?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느기는 점은 사회는 내가 상상한 것이상으로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기업조직이 그렇고 관료조직도 그렇고 쉽게 무너지고 파괴될 성질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을 손 쉽게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거기에 대항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계란으로 바위치기일까?
세상이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그래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조그만 노력은 계속 되고 있음을 살면서 느낀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조그만 실천들이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하나둘씩 겪여 나갈 때 더큰 비애를 느낀다.

옛날에는 사회밖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지만 지금이야 사회와 떨어져서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현실사회가 한 개인을 누르는 벽을 무척이나 커보인다.90년대식 전위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철인이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도 무언가의 삶을 개척해야 한니까?

모든 것이 파괴되는 시기에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시기에 파괴하려고 하는 그것을 인정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내생활이 오랜 세월후에 어떻게 기억될지를 생각하며 지금 이순간에도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많은 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당신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어떻게 기억될까요?

그대안의 작은호수…

아주 어릴 때 이런 소망이 있었습니다. 역사교과서에 이름하나라도 남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점점 커가면서 그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믿는 가치를 위해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했고.학생운동시절부터 노동운동,정보운동에 이르기까지.그리고 회사를 하면서 조금은 남과 다른 회사를 만들어보고자 했지만. 현재의 나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기억뿐 아니라 나쁜 기억을 심어주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도전이라는 행위가 기업가정신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결과로서만 판단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비즈니스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해외자료도 분석하고 설계하고 투자를 하고 – 인적 및 물적자원을 – 결국은 도전에 대한 평가보다는 그것에 의한 결과를 놓고 모든 것이 평가되고 그 틀속에 놓여질 수 밖에 없는 현실. 세상은 이미 도전하는 사람보다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을 기억하는 곳으로 변했나 봅니다. 아니 우리사회가 그런 도전을 기억한 적이 없는 것같습니다. 안철수씨가 한겨레와 인터뷰한 글에서 나와 있는 “기업가정신”.도전정신입니다. 그것이 Venture이고. 그래서 한국사회는 속깊은 곳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샌드위치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낸 사회상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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