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19년이 기한?

1.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늦은 시간 둘째를 데리러 멀리 차를 끌고 가야 합니다. 운전할 때 항상 켜놓는 국악방송. 운전하는 시간대의 프로그램은 ‘정여울의 책이 좋은 밤’입니다. 홍순철의 출판이야기와 장동석의 서재을 들으면서 책을 듣습니다. 방송으로 소개한 책중 ‘사피엔스’와 ‘말,바퀴,언어’는 흥미를 느껴 구매도 하였습니다.

3월의 마지막. 9시 시그날음악이 나오면서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는 19년을 기한으로 잡아야 한다”는 문장을 소개하더군요. 들으면서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습니다. 백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과 달리 옛날 19년이면 인생의 1/3입니다. 아주 길고 긴 시간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참고 기다리고 갈고 닦으면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인생 자체입니다. 아마도 기다림의 순간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칠 듯 합니다.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릴 듯 합니다. 19년은 성공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인생의 가치를 말하는 듯 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묻는 듯 합니다.

그래서 어떤 글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어유야담(於于野譚)  사회편에 실린 19년의 기한이라고 합니다.

무릇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는 의당 19년을 기한으로 해야한다. 진晋 문공文公은 의방에 있은 지 19년 만에 진나라로 돌아와 패자가 되었고, 소무蘇武는 흉노족에게 잡혀 있은지 19년 만에 한나라에 돌아와 인각麟閣(기린각麒麟閣의 준말, 중국 한나라 무제 때에 기린을 얻고서 지은 각으로 선제 때에 곽광 등 11인의 공신의 화상을 각 위에 걸었다)에 화상이 올려졌다.장건張蹇은 오랑캐에 들어간 지 19년 만에 돌아와 박망후博望候가 되어 이름이 천 년에 이르도록 전해졌으며, 범려范蠡는 19년 만에 천 금을 세 번 이루었고, 사마온공(사마광司馬光)은 19년간 낙양에 살다가 마침내 재상의 업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수신盧守愼이 19년간 진도에 유배 가서 독서하며 문장을 이루어 조정에 들어와 정승이 되었다. 유독 월왕越王 구천句踐만이 10년 동안 생민을 모으고, 또 10년 동안 그들을 가르쳐19년에 1년을 더해 오나라에 원수를 갚았다. 대개 10은 음수의 끝이고, 9는 양수의 극치이며, 19년이란 윤달의 남는 날짜가 다하는 때다. 주역에서 효는 6개가 된 후에 변하는데, 세 번을 변하고 나면 19가 되며 무릇 일이란 세 번째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일을 함에 잠깐 하다가 그만 두기를 혹은 하루 만에 그만두기도 하고, 혹은 한 달 만에 그만 두기도 하며, 혹은 1년을 하다가 그만둔다. 몇 년 이상을 참아내지 못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이내 스스로 한계를 지우고 경박한 사람이 되고 마니, 슬픈 일이로다.

유몽인 ‘어우야담’ 이 소개한 시를 보면 유몽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시가 있습니다. 어우집(於于集)에 실린 양양 가는 길(襄陽途中)입니다. 의롭지 않은 현실에 분노하는 지식인(^^)입니다.

“가난한 여인 베 짜는 뺨에 눈물 흐르네
얇은 옷에 떠는 낭군 옷 만들어 주렸더니
세금 독촉 불같아 짜던 베 끊어서 주었건만
한 아전 보내니 다른 아전 또 오네
貧女鳴梭淚滿腮
寒衣初欲爲郞裁
朝來裂與催租吏
一吏纔歸一吏來”

2.
다시 ‘정여울의 책임 좋은 밤’ 2부 마지막 유몽인의 호인 어우당(於于堂)을 소개합니다.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의 ‘쓸데없는 소리로 뭇사람을 현혹시킨다[於于以蓋衆]’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장자(외편) 제12편 천지[11] 기계가 발달하면 기계에 지배당한다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유람하고 나서 진나라로 돌아오다가, 한수 남쪽을 지나는 길에 한 노인이 채소밭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을 파고 우물로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 들고 나와서 물을 주고 있었다. 힘은 무척 많이 들이고 있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자공이 말을 걸었다.

“기계가 있다면 하루에 상당히 많은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그 효과는 클 것입니다. 왜 기계를 쓰지 않으십니까?”

노인이 머리를 들어 자공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습니다. 손쉽게 물을 풀 수 있는데 빠르기가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밭을 돌보던 노인은 성난 듯 얼굴빛이 바뀌었으나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리 선생님께 듣기로는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생기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에 대해 마음을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에 대한 마음 쓰임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기계의 쓰임을 알지 못해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몸을 굽힌 채 말대꾸도 못했다.

잠시 후 밭을 돌보던 노인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는 분입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공자의 제자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당신의 선생은 널리 배움으로써 성인의 흉내를 내고, 허망한 말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홀로 악기를 연주하며 슬픈 노래를 함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팔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당신도 당신의 정신과 기운을 잊고 당신의 육체를 버린다면 거의 도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몸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만 가시오. 내가 하는 일이나 방해하지 마시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빛이 하얗게 되고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30리를 가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조금 전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님께서는 그 분을 만나고 나서 무엇 때문에 얼굴빛을 잃고 종일 정신이 없으십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나는 천하에 훌륭한 분은 우리 선생님 한 분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었다. 내가 배운 선생님의 가르침은 일이란 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결과는 완성을 추구하며, 힘은 적게 들이고 드러나는 공로가 많은 것이 성인의 도라 배웠다.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구나.

도를 지키는 사람은 덕이 완전해야 되며, 덕이 완전한 사람은 몸이 완전해야 되고, 몸이 완전한 사람은 정신이 완전해야 된다. 정신이 완전한 것이 성인의 도이다.

삶을 타고나서 백성들과 나란히 행동하면서도 갈 곳도 알지 못하고 망연하면서도 순일하고 완전해야 한다. 공로와 이익과 기교 같은 것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서 잊혀져야만 한다.

그런 사람은 그의 뜻이 아니면 가지 않고, 그의 마음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비록 온 천하가 그를 칭찬하고 그의 말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온 천하가 그를 비난하고 그의 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는 마음을 비운 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도 그를 손상시키거나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덕이 완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일 것이다. 나 같은 자는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같은 사람인 것이다.”

자공이 노나라로 돌아와 공자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공자가 말했다.

“그는 혼돈씨의 술법을 배워 닦은 사람이다. 절대적인 도 하나만을 알지 상대적인 둘은 알지 못한다. 그의 속만을 다스리지 그의 밖은 다스리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밝게 하여 소박함으로 들어갔고, 무위함으로써 질박함으로 되돌아갔으며, 본성을 체득하고 순수한 정신을 지니고서 속세에 노닐고 있는 사람이다. 너는 무엇을 그리 놀라고 있느냐? 혼돈씨의 술법을 너와 내가 어찌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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