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웨어를 창업하는 과정에 대한 회고

넥스트웨어는 97년 11월 6일에 창립되었습니다. 창업은 풀빛컴퓨팅과 바른정보라는 두 회사가 합병하여 새로운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풀빛컴퓨팅은 대략 1990년을 전후하여 설립한 회사로써 이 블로그에 몇번 소개한 회사입니다.
주요한 실적으로

“한글내장 윈도우 통신소프트웨어 길 개발”
“나우누리용 멀티미디어 통신 스프트웨어 나우로 1.0 개발”
“한국PC통신 GUI통신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저가 운영하고 있던 바른정보와 만났던 계기는 풀빛컴퓨팅의 대표였던 이상길사장님을 통하여 1992~3년쯤 PC통신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UNIX환경의 BBS프로그램을 의뢰할 때부터입니다.

그렇지만 풀빛컴퓨팅과의 첫번째 만남은 실패하였습니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공급받지 못하였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BBS프로그램을 자체개발하기로 하고 94년 새롭게 설립을 준비중이던 나우누리서비스에 직원중 일부가 참여하면서 대형PC통신서비스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습득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이 때 개발자2명이 참여하여 나우누리서비스의 일부라도 개발한 것이 전환점이었습니다. 비록 VT단말을 이용하긴 했지만 유닉스환경에서 클라이언트<->서버구조로 시스템을 설계하였고 서버구조도 Multi Process모델을 채용하긴 했지만 Event Driven Server모델로 설계하여 대용량처리가 가능하도록 하였기때문에 이런 기술들은 이후 증권회사의 HTS 서버시스템을 설계하는데 그대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저 나름대로 PC통신시스템을 개발하고 “참세상”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동안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96년쯤 증권전산 V2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하던 증권종합정보시스템을 GUI환경으로 변경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왔기때문입니다. 당시 증권전산에서는 PC통신 GUI프로그램을 개발하였던 풀빛컴퓨팅에 개발의뢰를 하였고 풀빛컴퓨팅에서는 서버개발을 담당할 수 있는 회사로 바른정보를 추천하여 같이 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완전히 두회사 모두 증권업무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프로젝트는 쉽지않은 길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Delphi로 개발하였고 서버는 UNiX환경에서 C,gcc로 개발하였습니다.서버는 자체적으로 PC통신서비스에서 사용하고 있던 “마음”이라는 제품을 증권환경에 맞게끔 변경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97년 봄쯤에 개발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때 증권전산에서 개발에 같이 참여하였던 분들이 한참후에 증권전산을 퇴사하여 만든 회사가 “미래로가는길”이라는 회사입니다. 풀빛컴퓨팅에서 개발공급한 기술요소들이 이 회사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측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제품개발이후 여러곳에서 같은 시스템을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양사사이에 변화가 모색되었습니다. 이 때 개발을 의뢰받은 증권사가 “쌍용투자증권”,”일은증권”등이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증권HTS시장에 진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분문제,회사명칭등을 일사천리로 정리하였습니다. 지분은 모든 직원들이 지분을 보유하는 우리사주기업형식을 취했고 풀빛컴퓨팅의 대표이사님이 넥스트웨어의 대표이사를 하시고 저는 전략기획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하였습니다.

이때 잘몰랐지만 몇년후에 증권회사를 대상으로 이미 영업과 실적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원(펜타소프트),위닉스,자텍,소리마치등등. 소리마치라는 회사는 저희가 쌍용투자증권의 HTS를 개발할 때 대신증권에서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도 대신증권에 납품을 하려고 몇번 방문을 하여 설명회를 개최하였기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점은 회사를 설립하면서 경쟁기업에 대한 분석을 하지 못하였고 최소한 설립하고자 하는 기업의 SWOT조차 작성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증권회사를 대상으로 GUI=클라이언트서버방식의 HTS를 개발한다”라는 회사의 사업방향은  그 시점에서 보면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행계획과 재무계획등을 포함한 경영능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했지만…  최초 넥스트웨어의 출발은 순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발생하였습니다. 회사 설립후 일주일후에 IMF가 터진 것입니다. IMF가 회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심리적으로 자금흐름에 무척이나 민감해져있었고 IMF이후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던 제가 고객과의 관계에서 실수를 범하여 더 어렵게 만들게 한 원인을 제공한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98년 설 직전 당시 “쌍용투자증권”에서 추가개발을 하고 있을 즈음 심각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사로부터 가능하면 빨리 대금회수를 하여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은 추가작업을 계속 요청하고 개발자들은 고객사에서 개발을 하고 있는데 계약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하루이틀..계속 시간만 흐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객과의 회의도중 “계약이나 대금에 대한 이야기없이 개발을 못한다”고 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와버렸습니다. 이 때의 사건이 담당과장을 통해 몇몇증권에 소문이 나고 그런 분들이 나중에  넥스트웨어라는 회사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IMF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영업”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입소문”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죠. 이 때문에 영업에 실패한 경우가 두세번되고 이 때 사건의 당사자인 분과 친분이 있는 증권사에는 현재까지 한발도 디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쩝~~~~~)

넥스트웨어가 설립할 때 목표시장을 잡았던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단말”방식에서 클라이언트서버방식으로 주문시스템이 변화하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였고 그 변화의 시작에 저희는 중요한 준거사이트(Reference)를 확보하고 있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IMF라는 상황에서 회사경영진은 세가지 점에서 실패를 했습니다.

첫째 대상이 되는 고객에 대한 분석 및 경쟁회사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재무계획을 중기적으로 수립하지 못하고 회사설립이 모든 것인양 생각해버린 점
둘째 IMF라는 상황이긴 하지만 신생기업의 중요한 자산인 “핵심역량=핵심개발자”들이 1998년 여름경에 대거 퇴사하는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점
셋째 시장진입한 초창기 고객관계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질른 점.

이런 요인들이 이후 넥스트웨어가 걸어간 험난한 역사를 만든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덧붙임) 회사창립이후 2006년 11월말 넥스트웨어의 공식적인 영업을 중지할 때까지 저와 같이 한 사람은 오직 한사람입니다. 끝나는 순간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던 개발자인데 마지막이 너무 좋지 않아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같습니다. 20대중반 사회생활을 저와 함께 시작하였고 30대중반 회사를 떠났지만 마지막 몇년동안 너무 어려워서 아직 못준 급여가 많습니다. 평생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갚아야죠… “성공”이라는 열매를 못주었지만 “나쁜 경영자”라는 이미지로는 남고 싶지 않습니다. 혹 다시금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인생에 보상을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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