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살아남기

1.
우연히 아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는 회사에 다니는데 조만간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한 때 독점적인 영역을 확보하여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 하였지만 자본시장법이 만든 기회와 위기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시 금융위기에 이은 유럽위기가 만든 최악의 불황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처음 여의도에 첫발을 내딛은 때가 1995년쯤입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코스콤 Kostel 프로젝트를 할 때입니다. 이후 약간 모자란 20여년을 여의도에서 보내면서 큰 호황, 작은 호황, 작은 불황, 큰 불황을 겪었습니다. 그 사이 수많은 기업들이 나타났고 무너지고 다시 등장하고 없졌습니다. 그중 제가 대표로 있었던 ‘넥스트웨어’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혹 누군가 관심이 있다면 심층조사를 하면 어떤 법칙을 만들 수 있겠죠. 저는 조사할 능력이나 시간이 없습니다. 다만 시간을 통해 보았던 것을 관찰자 혹은 당사자로서의 느낌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름하여 ‘여의도에서 살아남기’

첫번째 법칙. “무조건 독점을 만들어라”
여의도가 만들어내는 증권IT시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년에 증권사 지출하는 비용을 놓고 보면 큰 금액입니다. 그렇지만 인건비를 포함하여 이런저런 비용을 빼고나면 외부업체에 나가는 지출은 크지 않습니다. 2000년을 전후한 인터넷혁명이 시작할 때는 신규투자가 많았고 기업들이 서로 나누어 경쟁을 해서 충분했습니다. 제갈공명이 말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도 가능한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 특수도 잠시입니다.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율은 늘어나지만 신규투자는 줍니다. 나눠먹을 수 있는 몫이 줄어듭니다. 수요가 줄어 들고 경쟁은 커집니다. 다수가 경쟁하는 시장이고 소수가 과점하는 시장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만이 독식하는 독점시장으로 남았습니다. 독점이란 “1등을 하라”를 뜻입니다. 2등은 생존할 수 없는 곳이 여의도입니다. 따라서 생존을 목표로 하면 1등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2등전략으로 가면 어느 순간 시장에 쫓겨납니다. 따라서 하루이틀 장사할 것이 아니면 무조건 경쟁자를 시장에서 내몰아야 합니다. 공생은 없습니다. ‘여의도’로 상징하는 자본시장의 규모는 크지 않다는 점을 꼭 기억하여야 합니다.

두번째 법칙.”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실탄을 확보하라”
저가수주도 불사하라고 하면서 실탄을 확보하라는 말은 이율배반입니다. 실탄을 확보하여야 하는 것은 기업입니다. 개인이 아닙니다. 실탄을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을 길게 합니다. 보통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정시퇴근은 없습니다. 야근과 주말근무는 생활입니다. 그렇다고 별도의 수당이 나가지 않습니다. 회사로 보면 이익입니다. 계약직 개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출을 적게 수입은 많게 해야 합니다. 모든 SI업체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저가수주의 진실입니다. 이것만 한다고 살아남을까요? 아닙니다. 또다른 일은 하여야 합니다. 현금이 되는 사업을 만들어내는 능력, 이것이 진짜 능력입니다.

셋번째 법칙.”갑에 찍히지 말아라.”
처음 여의도에 발을 딛으면 커 보입니다. 생소하고 모르는 사람뿐입니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아주 좁습니다. 굳이 케빈 베이컨의 6단계법칙을 찾지않아도 됩니다. 2단계법칙이면 다 연결됩니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자기도 모르는 말이 돌아다닙니다. 어디선가 부풀려집니다. 주로 나쁜 이야기입니다. 좋은 것이 절대로 소문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찍히면 퇴출입니다. 사실이 아니어도 뒷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뇌리에 박힙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인식을 남깁니다.

네번째 법칙.”기술로 승부하지 말라.관계로 승부하라”
여의도의 2단계법칙을 말했습니다. 이런저런 관계로 얽혀있습니다. CIO부터 말단사원까지 관계가 없을 수 없습니다. IT와 관련한 사람들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단순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증권IT가 가지는 특성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와 자리를 잡으려고 하면 이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권IT산업만의 도메인지식 때문입니다. 어떤 신기술이 있다고 합니다. 그 기술을 가지고 여의도에 들어온다? 힘듭니다. 다만 여의도에 자리잡은 어떤 업체와 함께 한다? 가능합니다. 기술경쟁을 할 때 앞서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뒤지지 않기 위한 투자이고 경쟁입니다. 이렇게 하여 여의도는 거대한 단일집단입니다. 그속에서 서로 공생하는 모습이죠.

2.
사실 반어법입니다. 제가 살아왔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달라서 실패를 했는지 모르지만 실패를 했고 현재 스타트업입니다. 그래도 실패를 교훈 삼아 1에서 했던 것처럼 하고싶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는 각자의 법칙이 있고 꼭 같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글쓰기를 한 이유는 지난 20년과 다른 법칙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여의도이길 바라기때문입니다.

지난 20년을 되돌아 보면 2000년 인터넷혁명을 맞았던 때가 기술적인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다양한 기업들이 시장에 등장하여 시대적 변화를 각자의 철학을 토대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승부하였습니다. 혁신의 시대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혁신을 이끌었던 힘은 어느덧 일상이 되었고 기술적 경쟁이 아닌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입니다. 그런데 다시금 새로운 혁명의 기운이 여의도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low latency, Big data, Realtime analytics’와 같은 기술 혁명입니다. 기업들은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전략을 수립합니다. 한동안 주춤하였던 새로움이 보입니다. 새로운 기업들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입니다. 지난 20여년을 여의도를 지켰던 기업, 새롭게 여의도로 진출하려고 하는 기업 혹은 개인들이 서로 어울려 과거와 다른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기술로 공정한 경쟁을 하고 끊임없이 혁신을 해나가는 문화이었으면 합니다. 그런 취지로 썩어 버려지는 밀알이 될지라도 ‘Low Latency Technology Conference’나 ‘자본시장IT 사랑방’을 합니다.

기업가는 기업으로 자신을 보여야 합니다. 사업가는 숫자로 자신을 보여야 합니다. 저도 숫자로 저를 보여야 하는데. 갈 길이 멉니다.(^^)

2 Comments

  1. dolppi

    생각할 것들이 많은 글이네요. “갑에 찍히지 말아라”는 말은 왠지 대표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적도 있는것 같아서..(죄송합니다..^^;;;)

    여의도가 시장이 작은 거대한 단일집단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증권산업 종사자가 4만명밖에 안되는 좁은 시장이니. 그래서 한때 “클러스터”라는 말이 유행할때 ‘증권사현업-IT-벤더사’로 이어지는 여의도 클러스터를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알고리즘포럼도 여전히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기는 하지만.. 여의도클러스터는 제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결론이 거의 났다고 봐야죠. ^^

    그런면에서 제가 다니는 회사는 여러가지로 아쉽죠. (나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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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Post author)

      저는 비하인드가 없어요. 블로그에 다 있어요…(^^)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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