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광부 33인을 통해본 위기대응

1.
칠레 광부 33인이 보여준 69일간의 휴먼드라마가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비록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살아 돌아온 기쁨을 함께 합니다. 그 동안 국내외 수많은 매몰사고를 겪으면서 살아돌아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돌이나 흙더미에 파묻힌 상태이거나 한두명이 살아돌아온 경우입니다.

33명. 개인이 아니라 작지만 집단,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숫자.
지하막장.밀폐된 공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
지하 700m.희망을 포기할 수 있는 깊이.

구조된 광부들이 전한 갱내 상황은 이렇습니다.

구조의 손길이 언제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 밀폐된 공간 속에서 그들은 본능적 공포와 싸워야 했다. 더구나 물과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지하공간은 섭씨 33도에 이르는 고온에 습도가 90%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세계였다. 두 번째로 구조돼 나온 마리오 세풀베다가 “신과 악마와 함께 있었다”고 한 말처럼 그들은 생과 사의 기로에 섰다. 다행히도 산호세 광산은 금·구리 광산이어서 탄광에서와 같은 메탄가스는 없었다.

이런 악조건, 우리식으로 말하면 지옥속에서도 33인의 생환이 가능했던 힘은 매몰이후 17일동안 33인이 보여준 협동(Teamwork)입니다.

그들은 8월 5일 지하 갱도에 갇힌 직후부터 스스로 음식 배급과 규율을 만들었고 철저히 지켰다. 남겨진 음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 48시간마다 과자 반 개, 통조림 생선 두 숟가락, 우유 반 컵 등을 먹는 게 전부였다. 잠과 휴식은 차량 좌석 등을 이용했다. 배변은 외진 곳에 간이 시설을 설치해 해결했다.

매몰된 지 17일째인 8월 22일 세상에 자신들의 생존을 알렸다. 이후 구조대가 그들에게 내려 보낸 소형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지상으로 보냈다. 영상엔 좁은 대피소에 둥근 탁자가 있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포커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그들은 놀이를 통해 죽음의 공포와 맞서고 있어다.
[칠레 69일간의 기적] ‘간호사 출신’ 환자 돌보고 3인1조 역할분담… 불침번도중에서

또다른 기사를 보더라도 매몰 초기에 빛난 리더십이 69일동안의 대서사극을 만든 시발점이었습니다.

칠레 산호세 광산에 매몰된 33명 광부들의 리더인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54)는 구조작업을 하루 앞둔 12일 영국 <가디언>과의 비디오폰 인터뷰에서 동료들을 칭찬했다. 하지만 광부들이 지하에서 69일 동안이나 구조작업을 기다리며 생존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광부들의 생존이 외부에 알려지기 전인 초기 17일 동안 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그는 부족한 식량으로 전원이 버티기 위해 이틀에 한 번 참치캔 몇스푼과 과자 몇조각 정도를 동료들에게 나눠줬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인간이 극한의 공포속에서 놓이면 이성보다는 본능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나 자산만이 살아 나가려고 하다가 무질서해지고 결국 모두가 공멸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협동은 이성입니다. 이성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한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우르수아의 리더십입니다.

그는 붕괴사고가 난 산호세 광산 33명 광부들의 반장 루이스 우르수아(54)이다. 그가 지상행 구조용 캡슐 ‘불사조’ 승차권의 최후 번호를 받은 데는 직책도 작용했지만 70일 가까이의 극한 생활 동안 그가 보인 리더십과 헌신성으로 미뤄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생존 소식이 17일 만에 지상에 타전될 때까지 그들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우르수아의 판단과 카리스마가 작용했다. 우르수아는 매순간 지혜와 과단성으로 자칫 혼란과 분열이 오기 쉬운 지하생활을 조직적 규율과 훈훈한 인간애가 오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판단력은 매몰 순간부터 발휘됐다. 광부들에게 재빨리 몸을 옹송그릴 것을 명령했고, 덕분에 모두 다치지 않았다. 또 생존과 구조를 위해 터널을 만들고 지형정보를 수집케 했다. 축구 코치로서의 경험과 지형전문가로서의 경험이 발휘된 결과이기도 했다.

2.

매몰된 갱내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세울 수 있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구조가 올 때까지 살아서 버티는 것”이 모두의 목표이고 희망입니다.

건강하게 살아 버티도록 하는 것이 갱내 리더가 하여야 할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우르수아와 동료들은 목표를 위해 최대한 팀워크을 발휘하였습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그에 따른 신속한 대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존 이유를 분석했다. 또 중심을 잡는 지도자가 질서를 잡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 연장자이자 50여년의 광부 경험이 축적된 마리오 고메스(63)는 동료들에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됐다. 그는 3명씩 한 조를 이루게 해 서로 기도하며 보살피도록 했다. 신앙에 의지해 서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한 것이다. 또 신속히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철저히 위기 상황에 대처했다. 간호사 출신 광부는 당뇨환자와 고혈압 환자를 돌봤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광부는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맡았다. 2교대로 잠을 자며 추가 붕괴에 대비해 불침번을 섰다. 아이팟과 성경책 등을 보거나 고화질 캠코더로 자신들의 생활을 찍어 지상에 전하는 등 평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지상과 지하를 오가는 캡슐을 통해 공급 받은 식료품은 스케줄에 맞춰 규칙적으로 먹었다.

“33명의 ‘나’를 버리고 ‘우리’로 뭉쳤다 … 그래서 살았다”는 표현처럼 우르수아를 따라 악조건 속에서도 광부들은 규율과 절제 있는 생활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우르수아는 광부들에게 처음 할당한 적은 양의 음식을 놓고 소모적인 싸움을 하지 말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지상으로부터 캡슐을 통해 음식이 내려왔을 때는 무리한 섭식을 자제케 했다. 배탈 등을 염려한 조치였다. 지상에서 음식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음식을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엄한 규율도 있었다.

지하공간도 현명하게 배분했다. 이를테면 작업공간, 취침공간, 위생공간으로 나누는 식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광부들을 12시간씩 교대근무를 했다. 그들과 함께 매몰된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활용해 낮밤을 구분하게 했다. 동료들은 그가 모두의 건강을 유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시련을 견디게 해줬다고 전한다.

우르수아는 동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동료들은 서로 다른 자질과 성품을 가졌지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들이 자랑스럽다.

물론 69일간의 생존은 운이 따랐습니다. 지하대피소가 있어서 33명이 작더라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식량도 있었습니다. 17일 지난 때 마침 지상에서 내려온 파이프로 생존을 알렸고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지구적인 이슈가 되어 지구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천주교 신자라면 다 ‘하나님의 보살핌’ 덕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33명의 광부들이 의지가 없다면 성공적인 생환은 불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검은 땅 밑에 갇혀 있으면 마치 죽어서 관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래도 광부들은 꿋꿋이 내려갑니다.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서지요.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매몰된 광부 개개인이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불가능했습니다. 리더십도 역시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을 때 힘을 발휘합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고메즈씨가 처음으로 지상으로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Dear Liliana, I’m well, thank God. I hope to get out soon. Have patience and faith. I haven’t stopped thinking about all of you for a single moment,

33인은 생존을 위해 나를 버리고 우리를 택했고 이런 행동으로 생환이라는 기쁨을 맞았습니다.

3.
?살다보면,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위기가 닥칩니다. 위기란 예고없이 찾아옵니다. 갑작스런 붕괴가 69명의 광부들을 덥친 것처럼.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출발은 ‘자포자기’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의지’입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살 수 있다’는 자기확신이 출발입니다.? 생존의지만으로 부족합니다. 위기에 당황하지 않고 질서있게 대응하여야 합니다. 이 때 리더의 역할을 절대적입니다. 난파된 배의 선장이 우왕좌왕하면 배는 결국 좌초하고 승객과 승무원은 목숨을 잃습니다. 냉정한 리더가 현장을 중심으로 위기를 헤처나가야 합니다. 매몰된 막장의 현장은 지형지물입니다. 빠른 시간내에 대피소를 찾아 옮겼고 효율적으로 자원(음식등)을 사용하여 17일후 ‘살아있음’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17일동안 질서와 규율이 없었다면? 아마도 많은 광부들이 생환의 기쁨을 함께 하지 못했을 듯 합니다. 현장을 중심으로 한 리더십이 곧 작업반장 리더십입니다.

물론 기업의 위기는 갑작스레 오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위기는 징조를 보입니다. 현장에 충실하면 위기의 징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프로젝트 수주가 적어지고,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채무가 늘어나면 위기의 징후를 느낍니다. 그렇지만 경영자는 자기 최면과 확신으로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현장이 느끼는 바 그대로 느끼면 위기가 더 큰 위기로 나아가지 않도록 할 수 있음에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장과 숫자, 경영자가 항상 의사결정의 토대로 삼아야 할 부분입니다.

몇 년전 이 맘때 ‘가을로’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를 사랑했던 민주(김지수)를 잃은 현우(유지태)가 민주가 남긴 일기의 흔적을 따라 가을 여행을 합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삼풍백화점 사고를 당했지만 살아남은 세진(엄지원)도 민주의 일기를 따라 가을 여행을 떠납니다. 현우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세진은 매몰되었다 살아났지만 밀폐된 공간으로 인한 후유증, 트라우마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합니다. 여행지를 다니면서 차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33명의 칠레노동자들이 쏫아지는 돈벼락에 취해 트라우마를 치료할 시간이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바랍니다. 평생 짊어지기엔 너무나 힘든 고통일 듯 합니다. ?그렇지만 막장에 싸워 이긴 의지로 미래도 개척하길 바랍니다.

The first several days, I can’t even explain it, but we had strength, we had spirit, we wanted to fight. We wanted to fight for our families, that was the greatest thing. I thought I was in a movie. – Mr.Urzua

1 Comment

  1. smallake

    문화일보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17일동안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인간이 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생환 광부 리차드 비아로엘은 14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틀에 한번 참치 한 숟갈밖에 먹을 수 없어 내 몸이 나를 먹어가며 버티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잡아먹을 생각은 안해봤느냐는 질문에 “한때 농담으로 그런 의견이 오간 적이 있었다”며 “그러나 그때 한 번 이후로 누구도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아로엘은 처음 11월에 태어나는 아이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공포와 불안감에 떨었다고 밝혔다.

    또한 내부에서의 갈등으로 한때 광부들 사이에선 심한 분열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만 아라야는 가족에게 내부에서 의견차로 광부들이 3개 그룹으로 분리돼 서로 주먹질까지 오가는 싸움도 벌어졌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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