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실패가 “자산” 한국은 실패가 “파산”

나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보지않는다. 아니 신문1면의 헤드라인을 보면 논설면까지 무슨 내용을 채워져 있을지 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이유는 저개인이 가지는 성향에 따른 것이 가장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에 조선일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이 “조선일보”를 열열히 애독하시기때문입니다. 이런 조선일보지만 매주토요일에 특집센션을 거의 매번 봅니다. 지난주 관심있게 본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파이오니어 3人 ‘한국엔 왜 실리콘밸리가 없는가’ 격정 토론

경영과 관련된 책은 잘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공을 위한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어느정도 도움을 주었던 “스타벅스 커피한잔에 담긴 성공신화”을 열심히 밑출치면서 읽었습니다.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벤처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성장하고 실패하는지”를 알고 싶었기때문입니다. 물론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벤처투자자를 Engel이라고 하는 뜻을 알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에 나온 위의 기사는 몇가지점에서 다시금 저의 관심을 끌게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성공의 기회는 제한되고 실패의 위험은 매우 큰 것이 현실입니다. 예컨대 대표적인 것인 금융관행입니다. 한국에서 벤처기업이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으려면 반드시 대표이사의 연대보증을 받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창업 후 회사를 운영하다가 망하면 기업인이 정리를 하기가 쉽습니다. 기업을 정리해도 경영자들이 새로운 창업을 하거나 다른 회사로 옮겨가면서 실패의 경험이 사회적 자산이 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연대보증 때문에 기업가가 문을 닫으면 회사 빚이 개인 빚이 됩니다. 문을 닫을 수 없어요. 중간에 한번 실패를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성공하는 기업가가 나올 수 없는 겁니다.”(안철수)

저는 한국사람이고 이미 실패한 사업가이기때문에 “실패가 파산”이라는 말의 의미를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안철수씨가 이야기한 것은 그중 일부분이죠. 그보다 “미국은 실패가 자산”이라는 말은 어느 측면에서는 짐작이 가지만 어느 측면에서는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분명 “실패”는 인생에서 큰 좌절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좌절이 아니라 또다른 도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져있다는 점이 아마도 미국의 다른 점일텐데. 그것이 무엇일지는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오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참으로 마음에 와닿습니다.

“미국 창업주들은 회사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영권도 포기합니다. 예컨대 창업주가 엔지니어일 경우 자신은 기술담당 이사나 영업담당 이사로 물러앉고, 외부 사람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는 경우도 많아요. 회사 성장을 위해 자기 지분이나 경영권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한국은 창업주가 오너십을 놓지 않으려고 하니 외부자금 수혈이 쉽지 않아요. 미국의 벤처캐피털은 돈을 투자할 뿐만 아니라 경영자문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자본가들이 던지는 쓴소리를 창업자들이 듣기 싫어하죠.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경영자의 능력이 회사경영의 99%를 좌우합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과감히 경영을 맡기는 실리콘밸리 모델을 많이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느때인가 대박을 꿈꾸며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 스스로가 그려낸 머리속의 현실속에서만 가능한 것을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 SW로 대박을 터틀릴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다음부터는 아무도 어떤 비즈니스모델이건간에 SW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미국의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거래 관계를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대기업도 중소기업에 대해 매우 가혹합니다. 다만 차이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사업환경이 미국 중소기업보다 더 열악하다는 것입니다. 회사경영에 필요한 돈도 없고 시장도 작기 때문이죠. 사실 한국의 중소벤처기업은 지금 분기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스타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좀 키워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종훈)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중 성공신화를 보면 이런 것을 연상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스타 임춘애씨를 생각하게 합니다.
“라면만 먹고 뛰었다”.“우유 먹고 뛰는 친구가 부러웠다”는 말로 온 국민을 울린 당시 17세의 ‘라면 소녀’ 임춘애는 여섯 식구가 무허가 건물에

뭐 이런 식입니다. 스스로 비용을 줄이고 줄이고 최소월급으로 생활하면서 도전을 하여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이것은 도전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한국사회는 도전을 도박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입니다.

도전이 온전히 도전으로 이해되고 그를 위한 시스템이 갖추어진 사회,그래야 위의 기사에서 말하는 기업자정신이 충만한 한국사회가 될 수있지 않을까 합니다.실패를 딛고 일어선다는 말은 참으로 쉽습니다. 그런데 내가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도전을 하려고 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같이 일을 할 사람은 이미 없고 투자는 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저작권보호가 없는 나라라서 몇년동안 투자했던 그러나 실패해서 하늘로 붕뜬 아이템을 사려고 하지 않고 그냥 헤드헌팅해서 내사업으로 하면 되는 것을 왜 투자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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