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5년을 버티기

1.
여의도에서 5년을 버티고 있습니다. 2010년말부터 시작한 ‘리스타트업(Re-Startup)’입니다. 여의도에서 3년을 버티기에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기회를 현실화하지 못하니 여러가지 일들을 합니다. 3년이 다가오면서 파트너들의 관계도 변화가 왔습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면서 기회를 위한 시간 벌이이기도 합니다. 3년의 법칙입니다. 저도 빙하기 살아남기에서 쓴 것처럼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 합니다. 지난 몇 달 여러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수면아래에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하나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느라 한동안 잠잠했던 화병이 도진 듯 합니다. 3년을 넘기기 위한 성장통으로 생각해야죠.

성장통은 3년동안 고생해서 만든 수익모델의 위기에서 출발합니다.

첫째가 ZeroAOS
둘째가 알고리즘트레이딩교육

ZeroAOS는 BS투자증권과의 협력사업이 기술적인 이유로 실패한 이후 기술파트너를 교체하고 새롭게 비즈니스관계를 만들고자 했지만 이런저런 걸림돌을 만났습니다. 가장 큰 장벽은 ‘건전화정책’이지만 영업적으로 보면 ‘IT파트’도 공감하고 ‘영업파트’도 이해하는 금융투자회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2014년 봄까지 몇 곳을 만났지만 IT와 영업이 함께 하지 못하면서 현실화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현실화하였다고 하더라도 파생상품시장이 죽은 상태에서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었겠지만. 또다른 고난은 교육입니다. 몇 분의 강사와 교육을 만들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기술파트너와 같은 교육파트너를 만들지 못했고 지속적인 사업은 내 몫이지 못했습니다. 여의도에서 3년을 버티지 못하고 4년에 문을 닫을 위기였습니다.

이 때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이 SI프로젝트입니다. 오랜 동안 여의도에서 함께 일을 했던 분들의 술자리에서 “SI를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한다”라고 답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 때부터 일년동안 우여곡절을 겪고 2014년 여름 모 프로젝트의 PM을 맡았습니다. 회사의 수익모델로 SI와 개발자의 소득모델로 SI는 다릅니다. 회사나 개발자나 고생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회사가 수주를 하기도 어렵고 하더라도 하더라도 이익을 남기기 힘듭니다. 반면 개발자는 일을 하는 동안 노예처럼 ‘개고생’을 해야 하지만 일하는 동안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습니다. PM으로 일함으로서 스타트업 3년 증후군을 SI로 넘길 수 있고 가장으로써의 책임도 질 수 있었습니다.

2.
여의도에서 4년차을 PM으로 살아가면서 바뀌지 않는 여의도를 보았습니다. 여의도에서 SI를 하지 않은지 6년이었지만 무언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책임’이라는 단어가 머리위로 스쳐지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수행사의 책임, PM의 책임, 개발자의 책임. 모두가 책임이라고 하지만 결국 의무이고 강제합니다. 사업수행계획서와 요구사항정의서를 쓰지만 그것은 그냥 종이입니다. 정해진 자원, 정해진 시간을 둔 것이 프로젝트인데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발주사는 하고싶은 일만 있습니다. 그리고 책임은 없습니다.

“잘 하면 발주사 몫이고 못하면 수행사 탓입니다.”

개발자들은 ‘금금금’에 심신이 지키고 병들어 갑니다. 저는 책임 공방에 혈압만 올라갑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예정했던 기간을 채우지 않고 중간에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PM을 끝내고 한달후에 혈압을 재었습니다. 일하는 동안 최고혈압이 150을 넘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최고혈압이 130수준입니다. 지금도 같이 일을 했던 개발자들은 몸과 마음이 힘들어갑니다.

PM으로 일하면서 이음으로 하던 일을 놓아야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렇지만 2015년 들어서면서 몇 곳에서 문의를 하더군요. 그동안 수도 없이 받았던 의례적인 문의라고 생각했습니다. DMA가 활발할 때 의례적으로 있었던 방문도 있었습니다. 과거와 다르지 않은, 흔히 있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2015년 7월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 우연이 기회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의례적인 문의는 새로운 변화를 느끼게 한 계기였습니다. 의례적인 방문은 그냥 방문에 머무르지 않고 계획적인 영업이 가능하도록 발상을 바꾸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기회는 우연이 찾아오더군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지난 한달동안 몇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우선 ZeroAOS사업을 위한 비즈니스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침체된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교육사업을 위한 틀도 재정리하였습니다. 오랜 동안 함께 일을 했던 후배가 교육파트너로 새롭게 참여합니다. 이전 강사와 달리 오래도록 교육파트너로써 일을 할 계획입니다. 교육장도 멋진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3년을 넘겨 4년을 버티고 5년이 되니까 조금은 달라진 듯 합니다.

3.
세계와 상대하는 월스트리트. 그곳에서 일을 하는 IT기업들은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합니다. 시장규모도 다릅니다. 한국처럼 우물안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닌 전세계를 상대로 팔아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듭니다. 월스트리트의 표준이 세계 표준이기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스닥이 개발한 매매체결시스템을 사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미국 나스탁과 연결하여 운용하는 시스템을 만든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매매체결시스템을 도입한 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One Source, Multi Market’이 가능합니다. 반면 한국은 여의도만 가능합니다. 제가 아는 한, 여의도가 만들어내는 시장은 오직 한 회사만이 먹고살 정도입니다. 홈트레이딩시스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웹시스템, 상품운용시스템, FIX/OMS, 해외선물시스템 등 현재 여의도에서 살아남은 회사는 그 분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회사들입니다.

‘이음’이 제가 해왔고 해려고 하는 분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회사일까요? 모릅니다. 시장이 너무 작아서 생존이 힘들 수 있습니다. 아니면 시장이 커져서 경쟁자들이 왕창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선택은 하나입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해서 실패를 겪었을 때 가슴속 깊이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기회는 생존한 자에게만 온다. 성공은 하늘의 뜻이지만 생존은 나의 몫이다”

기회가 왔을 때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모 회사로부터 큰 투자를 받았습니다. 방배동 내방역근처에 회사 사무실을 두고 있었습니다. 투자를 받고 투자회사가 강남 도곡동 대로변 건물로 이사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받았습니다. 무언가 성공(?)을 드러내고 싶었던 과시욕입니다. 그래서 남은 것은 패션으로 몇 억이나 되는 돈이 날아갔습니다.

2010년 가을의 끝. 다시 사업을 시작할 때 여의도를 떠나지 말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여의도에서 개인이 쓸 수 있는 비지니스센터를 알아보았고 몇 곳을 옮겨다니면서 여의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누군가 여의도를 떠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한방을 먹이고 싶은 심정으로 버텨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전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기회를 위해 여의도에 있었는데, 기회가 다가오는 지금 중요한 것은 생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생존은 돈과 사람입니다. 돈이 흐르면 사람은 함께 합니다. 지출을 줄이면 수익은 늡니다. 생존할 힘이 커집니다.

이런 생각으로 4년동안 여의도생활을 청산하고 앞으로 앞으로 15년을 위해 여의도로 떠났습니다. 이루지 못한 비지니스를 위해 비지니스센터에 있었지만 이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창업센터로 옮겼습니다. 여의도를 떠나 보라매공원근처로 14일 사무실을 옮겼습니다. 바른정보를 할 때 네번, 넥스트웨어를 할 때 네 번, 이음을 하면서 두 번 사무실을 옮겼습니다. 이번에 열한번째 이동입니다.

아는 후배가 말합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여의도가 아니더라도 비지니스는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열 번중 여의도는 딱 두번이었습니다. 여의도가 아닐 때 더 잘했습니다. 금융투자IT를 보라매공원에서 멋지게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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